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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소개

동유래
  • 화곡동(禾谷洞) 동명은 땅이 기름진 골짜기 사이에 벼가 잘 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유래되었다.

    발산동의 수명산 자락 아래에 위치하여 수명산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화곡3동은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천군 남산면 반곡리였다. 풍수지리학에서 거주지(陽宅)는 좌청룡에 자리잡아야 주인이 장수하고 부자가 되며 효자,효부가 많이 나오고 영리한 자손을 두게된다고 한다.

    단, 음택지(墓所)인 경우 죄청룡의 날이 우백호보다도 뛰어날 때에 후손이 잘 되므로 주택지와 묘소의 경우는 청룡의 기능이 정반대라고 한다. 화곡3동과 우장산동 일대는 수명산의 좌청룡에 해당된다. 강서로가 지나고 있는 화곡3동과 우장산동 일대를 조선시대에 반곡리라 한 것은 우장산과 수명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굽이쳐 돌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盤)'은 '굴(掘)'과도 통하므로 "굽은골"이라는 의미였는데 강서로와 화곡로가 교차되는 화곡3동과 우장산동 일대는 S字를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의 이름과 거의 맞아 떨어 진다.
연혁
  • 삼국시대에 한강서부지역은 백제의 시조 온조와 그의 형 비류가 나라를 세웠다는 미추홀에 해당되는데, 삼국사기 백제 한산주편에 "잉벌로현(시흥), 재차파의현 (강서구), 매소홀현(인천)등은 모두 미추홀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율진군 공암현, 고려에서 조선까지는 일부 변동이 있었으나 양천현으로 불리어옴.
  • 1914.04.01 김포군 양동면 화곡리
  • 1963.01.01 법률제1172호 「서울특별시·도·군·구의 행정구역변경에관한법률에 따른 서울시역의 확장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합병
  • 1977.09.01 대통령령(제8666호)으로 강서구 화곡동으로 확정
  • 1978.10.10 시조례(제1287호)로 화곡동에서 화곡3동을 신설,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자료관리담당
화곡3동
문의전화
02-2600-7592
최종 수정일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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