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김덕원(金德遠)묘 출토의복(出土衣服)

김덕원묘 출토의복
양천고성지
  • 지정번호 : 보물 제672호
  • 지정일자 : 1980년 8월 23일
  • 시대 : 조선시대

조선 중기 상류사회 복식 연구의 귀중한 자료
김덕원공은 조선 현종 3년인 1662년 정시(庭試)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출발하여 사헌부지평, 경상감사, 대사간,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689년에 우의정을 지냈다. 그는 폐비 민씨복위운동을 반대하여 제주에 유배되었다. 1698년에는 해남에 이배되었다가 1699년에 풀려났다. 711년에는 신원되었다.
김덕원공(1634~1704년)과 그의 부인 합장묘는 1972년에 발굴되었다. 그 안에서 비단의복, 구름 문양이나 꽃문양을 넣은 단로 등 53종 68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보존 상태가 모두 양호하여 우리나라 조선 중기 상류사회의 복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출토된 의복은 거의 전부 견(絹)으로 만든 것이며 운문(雲紋)이나 화문(花紋)을 넣어서 짠 단류(緞類)도 적지 않다. 그 종류로는 다음과 같다. 운문단관복표리(雲紋緞冠服表裏), 운문단천익(雲紋緞天翼)을 비롯하여 명주로 짠 청의 9점, 운문단, 공단 등으로 짠 직령포 7점, 공단, 운문단, 화문단, 명주 등의 이불 5채와 토수(吐手), 중치막(中致莫), 저고리, 바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17세기 조선 시대의 복식을 연구하는 경우 아주 중대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남녀 의복은 동시에 다수가 출토되어 하나의 뚜렷한 통계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괄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