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약사사

개화산(開花山) 약사사는 서울 강서구 관내 전통사찰 중 제1의 위상을 지닌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사찰이다.
1486년(성종 17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약사사가 주룡산에 있다고 나와 있다. 조선 후기 작성된 『양천읍지(陽川邑誌)』에 따르면 신라 때 주룡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 머물렀다 하여 주룡산(駐龍山)이라 이름했다.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開花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봉화를 받는 산이라 하여 개화산(開火山)으로도 불리었다.
그런데 조선 초기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올라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했다고 한다. 1737년에 이르러 송인명(宋寅明)이 개화사(開花寺)에서 공부하고 재상이 되어 그 인연으로 절을 중수했다. 순조 이후에는 약사사(藥師寺)로 개칭했다. 1827년 송숙옥(宋叔玉)이 쓴 『개화산약사암중건기(開花山藥師庵重建記)』에 의하면 '약사암'이라 하고 삼한고찰(三韓古刹)로 표기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은 개화사(開花寺)라는 제목으로 사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개화산의 울창한 숲과 한강 변을 비롯한 빼어난 주변 경치로 인해 겸재가 그림의 소재로 약사사를 찾았다. 겸재의 〈개화사〉(조선 시대에는 개화사라고 불렸다)라는 그림에서도 이 절에 냉천이 있었다. 병자가 목욕하면 오랜 병도 낫는 약수터라고 하여 약사사로 불리었다. 이 절 도량 중앙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3층 석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과 석불(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이 있다. 이런 문화재를 통해 고려 후기 창건 역사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다.

안내

지하철 | 5호선 방화역 4번출구

주요시설 | 약사사 3층 석탑, 약사사 석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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