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고려중기 탑파건축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
이 탑이 있는 약사사는 행주산성이 마주 보이는 강안(江岸)에서 동쪽으로 향한 사찰이다. 오늘날까지 법등(法燈)을 이어오고 있는 오랜 사찰인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의 봉수(烽燧)는 동쪽으로 서울의 목멱산 제5봉, 서쪽으로는 김포시 북성산과 응한다고 했다. 또 옛 기록에서는 절의 위치를 개화산 봉대하(開花山 烽臺下)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자료를 보아 일찍부터 국방과도 관련된 곳에 이 사찰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산 중턱에 있는 약사사 경내에 자리한 석탑으로, 약사사 도량 한가운데 있는 정중탑(庭中塔)이다. 단충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축조한 4m 높이의 3층 석탑으로서 고려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받침대가 되는 기단(基壇)을 1층으로 두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의 상륜부(相輪部)가 훼손되어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기단은 간략화되어 일반 석탑에서와 같은 기둥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탑신을 이루는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 내지 6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는 완만한 경사가 흐르고 있다. 비교적 길쭉한 모습을 하고 있는 탑으로, 기단이 간략화되고 지붕돌의 밑면받침을 형식적으로 새겨두고 있다.
따라서 이 석탑은 고려의 불교미술이 다소 퇴화하던 고려 후기의 시대를 잘 반영하여 고려 중기의 탑파건축(塔婆建築)의 변천과정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비록 전체적인 모양은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이곳 약사사가 위치하고 있는 개화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과 마주 보는 조강(祖江)의 광활한 풍광과 아울러 조망할 수 있는 명산이다. 옛 기록의 개화사는 오늘날 약사사로 명칭이 바뀌어 내려오고 있다.
약사사 약수
약사사 약수터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산의 이름이 개화산이라서 그런지 약수 역시 꽃물이 오르는 5~6월쯤이 되면 달짝지근한 물맛을 낸다. 바로 이때에 약수의 효능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즈음에 사람들이 약수를 받으려고 물통을 몇 개씩이나 들고 한강을 건너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 약수가 개화산의 이름에 맞추어 봄철에 맛을 내는 것인지, 약사사 약사여래가 물맛을 달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겸재(謙齎)도 감탄했던 절경, 개화산 약사사(藥師寺)에서 약수를 먹으면 마음의 병도 몸의 병도 모두 낫을 것이다.
약사사의 약숫물 맛
약사사의 약수터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산의 이름이 개화산이라서 그런지 약수 역시 꽃물이 오르는 5~6월이 되면 달짝지근한 물맛을 내는데, 이때 약수의 효능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쯤이면 약수를 받기 위해 물통을 몇 개씩이나 들고 한강을 건너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이 약수가 개화산의 이름에 맞추어 봄철에 맛을 내는 것인지 약사사의 약사여래가 물맛을 달게 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