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시대에 마한에 속했던 이곳은 삼국시대에 들어서서 백제의 서해 진출통로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한자식 표기법으로 공암현(孔岩縣)이라 불렸다.
강서구 최초의 지명은 재차파의(齊次巴衣)이며 고구려 본기에 최초로 등장한다. 화곡동(禾谷洞)은 땅이 기름져 골짜기 사이마다 벼가 잘되므로 벼가 익어 가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며 조선시대에 양천군 남산면 능동에 속하였던 더부리 마을이 오늘날의 화곡8동이 되었다.
봉제산 줄기인 까치산 아래 오목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약 10여호가 오손도손 모여살던 곳이었다. 화곡8동은 북쪽으로 까치산을 경계로 하여 화곡본동과 이웃하며 서쪽으로는 화곡1동, 동쪽으로는 화곡2동, 그리고 남쪽으로는 양천구와 접하며 동 한가운데를 곰달래길이 관통하여 지나가는 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전형적인 논밭이었고 까치산에는 숲이 우거져 산짐승들이 많았던 곳으로 까치산 중턱 (현재 화곡터널 입구)의 마치 삼태기모양의 오목한 곳에 더부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으며 대여섯채의 민가가 있었다.
연혁
삼국시대백제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통일신라 경덕왕한자식으로 공암현(孔岩縣)으로 개칭
고려 충선왕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
조선 고종양천군(陽川郡)으로 승격
일제시대양천군을 김포군에 통폐합하고 구 양천군 지역에 양동면, 양서면을 설치
1963.01.01서울특별시 조례 제276호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양동, 양서출장소 설치
1977.09.01대통령령 제8666호로 영등포구의 16개동 (염창동, 목동, 등촌동, 화곡동, 방화동, 신월동 외 10개 동)을 통합하여 강서구를 신설, 양서출장소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