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동의 동명 유래는 이곳에 김포비행장이 있음으로 해서 붙여졌다. 조선시대까지는 경기도 양천군 가곡면·납어리·송정리·소율리였으나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 제 111호에 의거, 경기도 내 각면의 영칭과 구역을 새로 정할 때 이들 납어리·송정리·소율리를 한데 묶어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라 하였다. 3개의 자연부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은 송정리는 소나무가 울창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항동은 일제가 소위 아시아공영권이라는 미명아래 중국대륙을 침략하려는 의도로 1913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일본의 항공산업을 발달시키고 육군항공대의 기능을 강화시키면서부터 달라졌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일본육군 군사비행장을 건설코자하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부터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에 공항동에 살던 조선시대 이래의 자연부락들은 군사비행장 시설계획지구 밖으로 소개되어 현재의 공항동 60번지 일대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케 되었다. 공항이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넓은 김포평야의 한가운데 비교적 습지가 적은 밭지역으로 형성되어 주거지역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이곳 공항동 일대에 거주하면서 과해동·방화동·마곡동·가양동·내발산동·외발산동의 농경지에서 농사를 하며 살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이 때문에 아직은 자연부락명이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가 있다. 현재 공항동은 북쪽으로 마곡동과 방화동이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외발산동과 연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오곡동·오쇠동 및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과 접하고 서쪽은 과해동과 접하고 있다.
연혁
조선시대까지경기도 양천군 가곡면 납어리,송정리,소율리
1914.03.01조선총독부령 제 111호에 의거 납어리·송정리·소율리를 한데 묶어 김포군 양서면 송정리라 함
1963.01.01법률 제 1172호'서울특별시·도·군·구의 행정구역변경에 관한 법률'로 인한 서울의 확장으로 서울시영등포구 공항동으로 개칭 편입됨
1963.01.01'서울특별시 조례 제 276호 '서울특별시 구 출장소설치조례'에 의해 영등포구에 양천출장소가 설치되어 공항리가 이에 속함
1977.09.01대통령령 제 8666호에 의해 영등포구에서 분리하여 강서구를 신설·공항동은 강서구에 속하여 지금에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