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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변화로 만드는 미래 구민과 도약하는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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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민센터

우리동 소개

동유래
  • 한강 서부지역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형 비류가 나라를 세웠다는 미추홀에 해당 되니 잉벌로현(仍伐奴縣:시흥), 제차파의현(濟次巴衣縣 : 강서구), 매소홀현(買召忽縣 : 인천)등은 모두 미추홀이다." 라는 기록이 삼국사기(卷 第37雜誌 第6地理) 백제 한산주편에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강서구는 비류백제의 미추홀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최초의 지명이 "제차파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차파의'라는 용어는 이 곳 가양2동의 허가바위와 광주바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이 곳이 최초의 중심지였음을 암시해주고 있으며, 실제로 조선 왕조에 들어와 양천현아가 가양1동에 위치하기 전까지는 공암리(파릉이라고도 함)가 이땅의 중심지였다.
지명변천과정
  • 제차파의 → 공암현(신라 경덕왕때) → 양천현(고려 충선왕때) → 금양현(조선초) → 금천현(조선중종) → 양천군(조선인조) → 양천현(조선숙종)
연혁
  • 조선초기까지 양천현
  • 1914.03.01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라 함.
    가양리는 조선시대 양천현아가 있던 중심지역으로 그 중 가장 오래된 가마동과 고양리를 합쳐 이름을 붙인 것임.
  • 1963.01.01 서울특별시조례제276호에 의거 서울특별시 양천동사무소에 소속
  • 1968.01.01 서울특별시조례 제491호에 의거 양동출장소가 폐지되자 영등포구의 직할동이 됨
  • 1970.05.18 양천동사무소의 명칭을 가양동사무소로 개칭
  • 1977.09.01 대통령령 제8666호에 의거 가양동은 영등포구에서 분구된 강서구에 속하게 되어 관할변경
  • 1993.04.01 강서구조례 제224호로 가양동이 가양1,2,3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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